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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토리니 티라 유적지는 검은해변으로 유명한 까마리 비치 뒷편에 있는 거대한 산 위에 위치해있다.

해발 567m의 메사보노 산에 위치해있는데 해발 567m라고는 하지만 차타고 올라가면 훨씬 높게 느껴진다. 차로 꼬불꼬불한 길을 올라가면 산 꼭대기에 천혜의 요새처럼 티라 유적지가 펼쳐진다.

이곳은 BC9세기부터 비잔틴시대까지 1400여년간 화려한 문명을 자랑한 곳이다.

그러다가 흥망성쇠를 거듭하다 화산 폭발 때 유적 자체가 사라졌고 1939년 화산재에 뒤덮힌 도시가 발굴되면서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아크로티리 유적 그리고 티라 유적을 보면서 이 지역의 화산폭발이 얼마나 거대했는지 궁금해서 유투브로 다큐멘터리를 찾아봤다. 

그 중 가장 잘 설명한 다큐멘터리...

좀더 심도있는 내용, 산토리니 섬이 화산활동으로 인해 어떻게 생성되었는지 잘 보여주는 내용이다. 


꼬불한 길을 따라 올라가면 저런 아름다운 광경이 펼쳐진다. 화산 폭발로 세워진 가파른 산이기에 올라갈수록 펼쳐지는 뷰가 다르다.

꼬불한 길을 달려 주차장에 도착했다.

주차장에서 10여분 정도 가벼운 산행을 해야 고대 도시 티라에 도착할 수 있다.


산정상에 위치하고 있어서 바람이 엄청 세게 분다. 속이 뻥 뚤릴 정도로 강풍이 분다.

바람도 좋고 경치도 좋아서 패러글라이딩이 있으면 저 밑으로 뛰어 내리고 싶을 정도이다.

그 옛날 도리안인들은 이 도시에 살면서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


해뜨는 모습과 해지는 모습이 보이고 사방으로 배가 다니는 곳이 보이는 이곳은 천혜의 요충지였을 것이다.

이곳은 성 Castle처럼 높은 사람들만 사는 곳이고 대부분의 식료품과 물품들은 저 밑의 마을에서 소작농들이 갖다 바치지 않았을까?

티라 유적지는 많이 파손되었지만 고대 도시의 형태는 잘 보존되어 있다.

어디가 집이고 어디가 운동장이고 어디가 공연장인지 잘 구분할 수 있다.

아래는 초입에 있는 성스테파노 성당.

내부는 초라했음.

여기는 지하 상하수도 시설을 보여주는 곳이었던 것 같다. 기본적으로 수로가 잘 정비되어 있고 골목 골목 계획적으로 구성되어 있다.


여기는 프톨레미아 제국 군사들이 주둔하였던 곳이었고 이들의 연병장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이 고대 유적지의 도시 계획을 보여주는 그림이다.

광장, 목욕탕, 일반 가옥, 관공서, 군 훈련장 등등이 구역별로 잘 구성되어 있다.

옛날 도리아인, 이집트 프톨레미아 왕조, 로마시대, 초기 기독교 시대, 비잔틴 시대의 유물이 고스란히 간직한 이곳은 아름다운 풍광과 더불어서 역사의 깊이를 느끼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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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토리니 여행 일정을 넉넉하게 잡다보니 산토리니 구석 구석을 다 돌아보게 되었다.

휴양지로만 알고 있었던 산토리니가 역사적으로 볼 것이 많다는 것을 알게 해준 곳이 있는데 하나는 티라 유적이고 다른 한 곳은 아크로티리 유적이다.

여기가 단순히 휴양섬이 아니라 예전에는 문명의 발상지였으며 지정학적으로 중요한 곳이라는 것을 알게되었다.

아크로티리는 화산폭발로 사라져버린 청동기 유적지이다.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아래 유투브 영상 참고


유적 복원지는 유료입장이다.

아크로티리 유적을 들어가니 첫번째 드는 생각은

"참 정성스럽게 조심스럽게 복원을 하는구나"라는 생각이다.

아래 그림을 보면 알 수 있겠지만 돌 하나 하나 흙벽 하나 하나 조심스러운 검증을 통해 재현을 한 흔적이 보인다.



이렇게 조심스럽게 세밀하게 복원중인 모습을 보니 시멘트를 쳐바른 미륵사지 9층 석탑이 생각이난다.

유적지 내부를 걷다보면 과거 청동기 시대 때의 도시의 모습이 연상이 된다. 

의외로 가정집의 모습이 잘 복원되어 있었다. 가정집의 모습은 현대의 서양 가족 구조 혹은 중동의 가옥 구조와 비슷했던 것 같다.

화산폭발로 갑자기 사라진 도시라 그런지 복원했을 때 옛 모습이 잘 드러나는 것 같다. 

언제 복원이 완료될지 모르겠지만 완료된다면 다시 와서 옛 청동기 시대의 도시의 모습을 보고 싶다.

유적지를 나와서 따뜻한 날씨에 늘어져 있는 개와 놀았다. 너무 순한 개라서 한참 쓰다듬고 장난을 쳤다.

아크로타리 유적지를 나와서 5분 정도 차로 이동을 하면 붉은 해변이 나온다.

사진이 그 신비한 색감을 담아내지 못해서 그렇지 직접 눈으로 보면 신비한 붉은 색감이 해변을 덮는다.

붉은 해변에 가기 위해서는 주차장에서 고개를 넘어 꽤나 걸어가야 한다.

힘들긴 하지만 경치가 좋아서 재미는 있었다.

붉은 흙으로 덮인 산을 재미로 오르다가 내려가지도 올라가지도 못하고 애들이 낑낑댄다.

결국에는 내가 출동하여 두 아이들을 구해줬다.

붉은 해변의 해변은 검은 모래에 가깝다. 조그마한 자갈들이 몽글몽글 펼쳐져있다.

여름에 오면 딱 좋겠다는 생각이든다. 그래도 물은 차갑지 않아서 발만 담그고 놀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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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토리니 명물은 당나귀이다.

가파르고 좁은 섬안에서 효과적인 이동 수단은 당나귀이었을 것이다.

특히 척박한 땅에서 농사를 짓기 위해서는 당나귀의 노동력은 꼭 필요했을 것이다.

당나귀를 타기 위해서는 피라마을 구항구 쪽으로 내려가야 한다.

티라 정상에서 피라마을 구항구로 내려가는 길 왕복 모두 당나귀로 이동이 가능하다.

우리는 티라 정상에서 밑으로 내려가는 케이블카를 타고 밑에서 다시 당나귀를 타고 올라오기로 했다.

케이블카는 저렴한 가격에 신속히 내려가기에 좋은 교통 수단이다.

무엇보다 티라 정상에서 보는 뷰가 일품이다.


케이블카를 타고 내려가면 왼쪽에는 티라마을 피라마을이 보인다.


그리고 아래로 내려가면 밑에서 예쁜 건물들을 볼 수 있다. 

하늘과 더불어 멋진 뷰가 펼쳐진다.

드디어 케이블카를 타고 도착.

피라 구항구에서 여유롭게 옛날 항구의 정취를 느껴본다.

저곳은 꽃할배에서 이순재가 돌아다녔던 폐가였던 것 같다.

겨울이라 어지간한 가게는 다 닫았다.

조금만 더 가면 피라 구항구가 나오는데 배는 가끔 다닌다.

여유롭게 폼잡고 계시는 황여사...


애들은 언제 당나귀를 타냐고 성화다.

계단쪽으로 가니 우리가 탈 당나귀가 기다리고 있다.

여기에서도 협상이 필요하다. 무조건 첫번째에 부르는 가격을 그대로 OK하면 안된다.

처음에는 걸어갈 것처럼 무심하게 대하면 계속 따라오면서 가격을 낮출 것이다. 

이렇게 2~3번 정도 흥정을 하고 마지막에 협상이 결렬되어 다시 걸어서 올라가면 더 저렴한 가격을 부른다.

어차피 이 당나귀는 계속 오르락 내리락 할 것이기 때문에 빈 당나귀로 올라가는 것은 손해이다.


당나귀를 탔으니 점심에는 Yellow Donkey 맥주를 마셔줘야 한다.

다시 티라에 있는 레스토랑에 들어가 문어, 파스타, 피자를 시켰다.

특히 식전빵으로 나오는 빵이 너무나 쫄깃하니 맛있었다.

올리브유에 찍어바르니 최고의 맛이 나온다.

산토리니에 와서 올리브유는 원없이 먹는 것 같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올리브유를 배에 주유하면서 돌아다녔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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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울에 찾아간 산토리니.

산토리니는 여름에 가는 것이 정석이지만 그리스 온 김에 산토리니는 들려야할 것 같아서 2박 3일 짧은 일정으로 방문했다.

아테네 공항에서 국내선을 타고 산토리니로 이동을 했다.

그런데 아뿔싸 2시간 전에 모바일로 체크인을 못해서 항공권이 취소된 것이다.

제일 저렴한 라이언에어로 예약을 했는데
라이언 에어는 출발 2시간 전에 반드시 체크인을 해야 한다고 한다.

사실 체크인을 하긴 했는데 애들이 체크인이 안되는 것이었다.

알고보니 내가 항공권을 구입할 때, 성인 4명으로 구입을 하여 아이들 체크인이 안되는 것이었다.

저가 항공이다보니 표도 체크인도 다 손님 스스로에게 책임을 전가한다.

할 수 없이 다음 항공편을 타서 출발 그리고 예약 변경에 따른 패널티 요금도 엄청 지불.

아... 저가 항공은 정말 모르면 호구이구나 생각했다. 다음번에 저가 항공권 호구가 되지 않기 위한 수업료라고 생각했다.

이런...차라리 그 돈이면 애게해 항공 비즈니스석을 타는 것이었는데...

3시간 늦게 산토리니에 도착해서 렌터카를 픽업했다. 렌터카는 폭스바겐 폴로. 4인 가족이 타기에 딱 알맞은 크기였고 특히 산토리니의 좁은 골목길을 이동하기에 안성맞춤이었다.

첫날은 너무 지쳐서 그냥 호텔에서 쉬었다.
산토리니의 상업 중심지는 Thera이다.

티라에는 주요 음식점, 쇼핑센터, 여행센터 등이 있어서 숙박하기 편리하다. 아기자기한 숙박을 원한다면 이아마을이 좋지만 편하게 잠만 잘 목적이면 티라가 다 좋다.

교통 상업 중심지로 모든 편의 시설이 다 있다.

저녁은 새우구이, 오징어 튀김 깔라말뤼, 피자

티라 마을 중심에서 밥먹고 사진 한 컷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날씨가 너무 좋다.
바로 이아마을로 출발

이아로 가는 길에 뷰가 너무 예뻐서 차위에서 감상중...

캬... 뷰 정말 끝내준다.

제일 멋진 뷰를 자랑하는 이아 마을은 겨울인데도 예쁘다.

겨울이라 그런지 한산하다.
사람이 없으니 부산하지 않고 여유롭게 다닐 수 있어서 좋다.

우연히 만나게 된 당나귀 부대들

사진을 찍다가 보니 당나귀들이 좁은 골목을 돌아다니면서 모래와 시멘트를 나르고 있었다.

겨울에는 여름 성수기를 맞아 각 호텔들이 리노베이션을 하고 있었다.

아무것도 안하고 느긋하게 바다와 구름만 봐도 좋다.

추운 날씨지만 따뜻한 햇살에 눈이 감긴다.

어느덧 저녁
달이 뜨고 하늘은 노을로 물든다.
이아는 노을을 보기에 제일 좋은 장소이다.

아쉽게도 구름에 가리긴 했지만 일몰이 너무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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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 운하는 에게해와 이오니아해를 잇는 운하로서 수에즈, 파나마 운하와 더불어 세계 3대 운하로 불린다.

1881년에 착공하여 1893년에 완공한 대규모 토목공사로서 총길이 6.3km 폭 21, 깊이 80m이다.

지금도 사용되고 있는 운하로서 아시아와 유럽을 잇큰 중요한 루트이다.

자세한 루트는 아래 손수 그린 그림 참고.

원래는
BC 7세기 경에 운하를 만들려고 했다가 중단되고 로마황제 시저 때에 다시 시도하다가 흐지부지 이후 네로 황제가 무역로 단축을 목적으로 다시 시도를 한다. 로마제국 치하에서 모은 죄수 및 노예들 6,000여명을 동원하여 대규모 공사를 하다가 네로 역시 공사를 마치지 못하고 밀려난다.



직접 본 고린도 운하는 장관이었다.
고소공포증 있는 황여사는 벌벌 떨면서 인생샷 날리시겠다고 저러신다.

그런 엄마를 놀리기 위해 붙잡고 밀치겠다는 아들과 뒤에서 낄낄 구경하는 딸.

겨울이라 크루즈는 운행하지 않아 아쉽지만 스킵.

필리폰네소스의 또 다른 유적지 옛 고린도 유적지이다.

고린도는 성경의 고린도전후서 때문에 뭔가 신성하고 유서깊은 곳이라고 생각된다.

하지만 과거 이곳은 환락의 도시였다.

무역업이 성행하면서 바울이 활동하던 시기에 이곳은 인구 30만의 대도시였다.

위의 지도를 다시 보면 이곳은 해상 교통의 요충지로서 무역업과 상업이 성행하였다.

돈이 모이고 좋은 물건들이 모이는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곳이었다.

이곳은 쾌락과 향락을 좇던 사람들이 득실거렸으며 성적으로 문란했다.

저 앞에 보이는 바위가 있는 곳은 아크포코린트 산으로 카뮈의 시지프스 신화의 모티브가 된 곳이다. 거대한 바위를 산 정상까지 올리면 다시 내려오고 끝없이 오르락 내리락 한 시지프스 이야기는 목표없이 반복적으로 살아가는 모습을 나타낸다.

이 산은 575m 밖에 안되는데 그 정상에는 아프로디테 신전 유적이 있다. 아프로디테는 좋게 표현하여 사랑의 신이지 알고보면 음란의 신이다.

저 산에는 매음굴이 있었고 고린도 사람들은 이곳을 성전처람 여기며 드나들었다. 그 안에는 신녀+창녀들이 1000명 가까이 되었고 이들은 성관계를 신께 드리는 예배로 생각했다.

사도 바울은 이곳 고린도에서 복음을 전파하였고 전도를 했으며 성도들을 양육했다. 에베소를 왔다갔다 하면서 이곳에 있을 성도들에 대해 걱정을 많이 했던 것 같다.

그래서 고린도전후서에는 성적 유혹에 대한 말씀이 많다.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

이 말은 이 세상의 음행하는 자들이나 탐하는 자들이나 속여 빼앗는 자들이나 우상 숭배하는 자들을 도무지 사귀지 말라 하는 것이 아니니 만일 그리하려면 너희가 세상 밖으로 나가야 할 것이라...

이제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만일 어떤 형제라 일컫는 자가 음행하거나 탐욕을 부리거나 우상 숭배를 하거나 모욕하거나 술 취하거나 속여 빼앗거든 사귀지도 말고 그런 자와는 함께 먹지도 말라 함이라...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이곳이 옛날 고린도 유적이었다.
신전, 광장, 극장 등 화려한 도시의 모습을 그대로 갖추고 있다. 날씨는 따뜻하고 돈은 넘쳐나고 사람들은 많다보니 많은 유혹이 있었으리라 짐작된다.

그 잔해이긴 하지만 화려했던 옛 영화가 느껴진다.

아래는피레네의 샘. AD 2세기 헤로데스가 건립한 것으로 아들을 잃은 피레네의 전설이 내려져오고 있다.


아폴론 성전과 아크포코린트 산.

입구 근처에는 박물관이 있다. 그 당시의 문화와 역사에 대한 이야기가 잘 정리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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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아테네의 대표적인 여행지 파르테논 신전. 아크로폴리스의 가운데에 우뚝 서 있는 파르테논 신전은 아테네의 정치 중심이었으리라...

BC 5세기 중엽 건축된 정교한 양식의 건물로 도리아식 양식이다.

아들 녀석이 아테네에 오자 나에게 퀴즈 하나를 냈다. "아빠 파르테논 신전 가로대 세로 비율은 어떻게 되는지 알아?"
"바로 1:1.61803이야. 황금 비율이라고 하지"
인간이 가장 아름답다고 느끼는 비율이 여기에 적용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팩크 체크를 해보니 아니라고 한다.
뉴욕대 교수팀이 측정한 길이를 기준으로 하면,
파르테논 신전의 가로 세로비는 정수비인 9:4라고 한나.


파르테논 신전을 한창 보수 공사 중에 있다.
너무 늦게 진행되는 듯 보인다.

예전에 복원된 모습이다.
시멘트 바른 것처럼 색상이 눈에 거스린다.
모양은 대략 맞추었는데 퍼즐 맞추듯 복원된 모습이 안타깝다.

파르테논 신전 복구 프로젝트에 대한 소개와 과거 복구 사례 안내...

지금 프로젝트는 EU문화재단 펀딩을 받아 진행되는 것이라고 한다.

옆으로 보이는 것은 니케 성전. 영어로는 NIKE.
아테네가 승리의 여신이 도망가지 못하게 날개를 잘랐다는 이야기가 있다.
아마 승리의 여신을 상징하기 위해 Nike로 이름 지은듯.



파르테논 신전에서 바라본 아테네 풍경.
이 위에 올라온 사람은 권력욕이 스물스물 올라왔을 것 같다. 내가 이 아테네 국가를 다스리고 있다는 희열을 주는 뷰이다.

그 다음 파르테논 신전에서 조금만 내려오면 헤로데스 아티쿠스 음악당.

위에서 바라본 헤로데스 아티쿠스의 모습은 경이로웠다.
원형으로 둘어싸여진 관객석과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한 중앙무대가 오묘한 느낌을 자아낸다.



BC171년 경에 세워진 이 음악당은 아직도 사용되며 5000여명을 수용할 수 있다고 한다.
그 형태를 보니 아주 잘 관리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관객석이 가파른 곳에 위치하고 있는데 그만큼 밑에 있는 소리가 위에 까지 정확하게 전파될 것 같았다.

극의 발상지 디오니소스 극장
그리스에는 이러한 형태의 고대 원형 극장이 여러개 있다.
이 극장의 이름은 디오니소스 극장
연극과 포도주를 관장하는 그리스의 신 디오니소스의 이름을 딴 극장으로 1만 7천명까지 수용하는 엄청난 사이즈의 극장이라고 한다.

극장 안에는 직접들어갈 수 있다.
관객석에 앉아서 그 옛날 연극 공연 가운데에 있다고 상상해본다.

그냥 멍하니 가만히 있으면서 햇빛을 즐기다가 내려왔다.

너무 배가 고파 수블라키 샐러드와 피자 폭풍 흡입.



밤에는 야경을 보기 위해 리카비투스 언덕을 올랐다. 렌터카가 있어서 산정상까지 차로 올라가고 10여분 정도 계단을 타고 올라갔다.

정상에서 바라본 야경은 정말 황홀하다.

과거의 아테네 도시도 이렇게 아름다웠으리라 생각하니 아테네 문명이 얼마나 찬란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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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테네 시내 중심에서 20분 정도 걸어가면
올림픽의 출발점인 근대 올림픽 경기장이 나온다.

그 옛날 올림픽은 남자만 참여하는 경기였다. 도시국가 시절 전쟁에서 유래한 경기를 만들어 제우스 신전에 바치는 제사 의식과 연계하여 만들어진 것이 올림픽이라고 한다.

고대 올림픽 경기장을 2000년 그리스 올림픽에 맞춰서 재정립한 것이 지금의 근대 올림픽 경기장이다.



경기장에 왔으니 한바퀴 정도는 돌아줘야지 ㅎㅎ
경기장은 동네 학교 운동장처럼 자유롭게 개방하였다.

운동도 하고 사진도 찍고...


안쪽으로 들어가면 올림픽 박물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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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테오라 수도원에 가기 위해선 아테네에서 3시간 가량 북서방향으로 운전을 해야한다.

꽃보다 할배에서도 메테오라를 방문했다고 해서 메테오라 방문 전에 다시보기로 봤는데 볼수록 기암절벽에 만든 수도원이 신기하기만 했다.

메테오라는 16세기만 해도 16개 수도원이었는데 지금은 6개 정도만 남아있다.

메테오라 수도원을 방문할수록 어떻게 이곳애 건물을 세웠는지 신기하다.
세계 10대 불가사의에 꼽힐 정도로 깎아지른 바위에 저런 건물이 서 있다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다.

수도원 한쪽으로 도르래가 보인다.
저 도르래로 필요한 물건을 아래서 공수를 받아 옮겼을 것이다.

생활의 불편은 저 도르래로 해결될 듯 한데
도대체 저 웅장한 건물은 어떻게 만들었다는 것인가?

메테오라에 올라가 있으면 칼람바카 시내가 보인다.

정말 장관이다. 내가 마치 구름 위에 떠 있는듯한 느낌이다.

수도원 어느 곳에서 사진을 찍어도 예술 사진이 나온다.

유의할 점은 각 수도원마다 오픈하는 시간이 다르니 반드시 시간을 확인할 것.

배가 고파서 점심을 먹으러 갔다.
식당은 꽃할배에 나오는 그리스 식당.
안에 들어가니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다.

여기서 양 숯불갈비를 먹었는데 정말 예술이었다. 중동의 양갈비 중국식 양갈비와는 또 다른 맛이었다. 숯불향이 더 진하고 허브향이 진했으며 식감은 부드러웠다.

점심 이후에 다른 수도원들을 보러 다녔다.

오후가 되면서 석양을 받아 더 오묘한 색깔을 뽐낸다.


메테오라를 구경하고 들어온 숙소.
바위 바로 밑에 있어서 좀 무서운 느낌이 든다.
바로 앞에 있는 바위를 보며 큰 바위 얼굴 소설이 생각나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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