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하노이에 호텔을 잡을 때 힐튼과 노보텔 중에 고민을 했다. 결국엔 호텔 포인트 때문에 힐튼을 선택.

힐튼은 하노이 오페라 하우스 옆에 위치해 있었고 모던한 곳에 위치해 있었다. 특히 외곽으로 나가는 패키지 여행 주요 출발점이 오페라 하우스여서 짱안 등 외곽 당일 치기 여행에 유리하다.

또한 걸어서 주요 맛집에 닿을 수 있어 점심 저녁에 맛집 찾아다니기도 유리하다.



하지만 호텔 시설은 좀 낡았다.
어떤 객실은 냄새가 나기도하고 카펫도 지저분하다.

힐튼 명성에 비해 좀 후달리는 편이나 아주 나쁘지는 않다.

다이닝 레스토랑은 괜찮은 편이다. 특히 조식은 훌륭하고 메뉴 또한 다양하다.

난 Executive 라운지에 갈 수 있었는데 E 라운지는 다른 힐튼 수준의 서비스였다.


반응형
반응형
 영화 킹콩을 본 사람은 그 기이한 경관이 머리에 남을 것이다.

이 킹콩 영화의 배경이 된 곳 하노이 남쪽에 있는 짱안이다.

베트남에서 2시간 가량 남쪽으로 내려가면 닌빈이라는 지역이 나온다. 조그마한 시골 마을로 닌빈 안에서도 유명한 곳이 짱안이다.

짱안에서는 보트 투어를 반드시 해야 한다.


조그마한 배에 몸을 실으면 현지인 뱃사공이 발로 배를 저어준다. 희한하다 싶을 정도로 발로 노를 질 젓는다.

거의 아크로바틱 수준이다.
두시간 정도 천천히 강바람을 쐬면서 옆으로 펼쳐지는 베트남 시골의 풍경을 즐기면 된다.

옆으로 지나다니면서 사진을 찍어주는 사람이 있는데 싫다고 해도 사진을 찍고 나중에는 돈을 받는다.

햇볕은 좀 세다. 5월인데 9시부터 햇볕이 따갑다.

철로된 보트를 만지면 뜨거울 정도다. 2시간 동안 그을리지 않기 위해서는 선크림을 바르고 모자를 꼭 써야한다.

우리가 머문 숙소는 짱안에서 걸어서 5분 떨어진 것에 위치한 호텔이다.

시설도 모던하고 내부도 깔끔한 새로지은 호텔로서 뒤편에는 수영장도 있었다.

바로 뒷편에는 논밭이 넓게 펼쳐져 있어서 탁트인 뷰를 감상할 수 있다.
반응형
반응형

군산 방문 핫플레이스

군산은 공업도시라는 이미지가 강해서 여행을 갈 생각은 하지도 않았다. 뭔가 낙후된 항구 공업도시라고 해야할까?

하지만 막상 방문을 해보니 가족단위로 여행하기에 정말 좋은 곳이었다.

한국 현대사에서 개발이 더딘 곳이 호남 서해안인데 그 결과 역설적이게도 근현대사 관광 유적을 많이 갖고 있는 곳이 군산이다.

군산은 일제 강점기 때 호남의 곡창지대 수탈의 주요 관문이었다. 그래서 은행, 세관, 관공서 등 수탈에 필요한 행정 인프라가 잘 갖추어져 있었고 일제 강점기 건물 양식을 많이 볼 수 있었다.

그 대표적인 장소가 바로 동국사

1. 동국사
동국사는 일본식 절이다. 입구에 들어서면 오사카 지역에 와 있큰 듯한 느낌이다.

동국사 역사는 다음 나무 위키를 참고.
경술국치 1년 전인 융희 3년(1909), 우치다(內田佛觀)를 위시한 일본 조동종(曹洞宗) 승려들이 금강선사(錦江禪寺)란 이름으로 군산에 포교소로 개창하면서 시작되었다. 현 동국사 부지를 기증받아 건물을 신축, 1913년에 완공하여 현 위치로 이전하였다. 일제강점기 동안은 조동종 소속 사찰로서 이름을 금강사(錦江寺 긴코지)라 하였다.[4] 군산시에 일본인들이 많이 모여 살았으므로, 이들 일본인 신자들을 위한 사찰로 기능하였다.

그리 오래된 절도 아니기 때문에 특별한 것은 없지만 그냥 산기하다 하는 정도의 느낌이다.

 
2. 짬뽕 원조집 용문각

구시가지 골목을 돌면 근현대사 박물관 근처에 용문각이라는 중국집이 나온다. 지금은 영업하지 않고 박물관으로만 쓰인다.

여기에는 과거 60-70년대 중국집의 흔적을 볼 수 있다. 주인 아저씨는 옛날 칼러 TV, 에어컨, 난로, 보온 도시락, 밥그릇 등 희귀템들을 많이 갖고 계셨다. 아래는 예전 메뉴판이다. 몇백원에 중국음식을 먹다니 지금 기준으로는 말도 안되는 가격이다.

주인 부부는 화교출신으로 군산 중화요리의 대부 격이시다.

주인분께 직접 짬뽕의 기원에 대해서 들었다.
원래 짬뽕은 초마면이 기원으로 돼지뼈 국물로 만든 맑은 국물 면 요리였다.그러나 한국 사람들이 매운 맛을 좋아해서 고추가루를 넣기 시작하면서 주인 아저씨가 고추기름으로 빨갛게 국물을 만들기 시작했고 여기서 짬뽕이 시작되었다.

원래 초마면이었지만 사람들이 붉은 국물 비쥬얼만 생각하면서 "이것 저것 짬뽕으로 섞은 빨간 국물 국수" 이렇게 칭하면서 자연스레 짬뽕이라는 이름이 생기게 된 것이다.

3. 경암동 철길마을

폐철길을 관광상품으로 만든 곳. 레트로 분위기가 그대로 나는 곳이다.

철길따라 걷다보면 옛날 불량식품 가게, 오락실, 슈퍼 등 향수를 자극하는 가게들이 줄을 서 있고 사람들은 옛날 교복을 입으며 사진을 찍는다.

이런 철길 옆으로 주택이 있었다는 것이 이해가 가질 않았다. 분명 이 동네는 열악한 주거여건 속에서 살았던 서민 동네였을 것이다.

4.근대역사 박물관 및 군산 항쟁관
이 지역의 근대역사를 잘 정리한 박물관으로 통합입장권을 구매하면 6~7군데를 무료로 입장할 수 있다.

이 지역에는 초기 선교사들이 정착한 지역으로서 기독교 신앙을 가진 독립운동가들이 활발하게 활동하였다.

군산 항쟁관에는 이 지역 출신 애국지사에 대한 기록이 잘 정리되어 있다.

5. 선유도 짚라인

선유 짚라인은 바닷가를 가로질러서 즐길 수 있는 래포츠이다. 40초 가량 짚라인을 타고 가면 스릴을 만끽할 수 있고 광활한 뷰가 펼쳐진다.

높이 45미터 길이 700미터로 짧은감이 없진 않지만 그래도 다른 짚라인 보다는 저렴하다.

초등학생도 탈 수 있어 남녀노소 즐기기에 좋은 레포츠이다.

6.군산 구도심: 이성당 빵집, 초원 사진관
여기는 긴말 필요없다. 빵의 성지인 이성당 빵집은 별관 본관 할 것 없이 기다란 줄을 서야 빵을 먹을 수 있다.

초원사진관은 한석규 심은하 주연의 8월의 크리스마스 배경이된 장소이다.

영화 속 모습 그대로 풋풋하게 잘 보존했다.

7. 전주 한지 박물관
전주페이퍼에서 만든 한지 체험 박물관이다.
닥나무 수확, 껍질 벗기기, 삶기, 펄프 건지기, 말리기 과정을 거쳐 한지가 만들어지는데 한지는 정말 시간과의 싸움이다. 한지는 통기성과 흡습성이 우수하며 견고하여 창문, 가구 등에 널리 쓰였다.

반응형
반응형
한탄강 래프팅은 대학생때 해보고 15년 후에 해보는 래포츠였다.

쿠팡에서 예약하고 집합 장소로 출발.
시간은 약 2시간 정도 소요된다고 하는데 이것저것 시간까지 생각하면 4시간은 넉넉히 잡아야한다.

집합장소에서 장비를 받고 간단한 안전 수칙을 설명들은 다음 관광버스로 래프팅 장소로 이동한다.

버스에서 그리고 계곡 입구에서 사진찍고 출발!


초입에 그 유명한 다리가 있다.
한쪽에는 김일성이 한쪽은 이승만이 지은 다리가 있다. 승일교

아이러니한 남북 합작 다리이다.

간단히 강습 받고 노젓기 출발...

하필이면 이 때가 최악의 가뭄이라 물살이 세지 않아서 재미가 없었다.
툭하면 돌에 걸려서 보트를 빼내고 노를 깊이 젓지도 못하다.

모쪼록 보트를 리드하는 조교 아저씨가 고생을 많이 하셨다.


끝나고 간단히 샤워하니 해가 저물기 시작했다.
반나절 코스로 다녀오기에 딱 좋은 코스
반응형
반응형
서대문 형무소...

그 동안 수많이 서대문을 지나갔지만 서대문 형무소를 815를 맞아 가보게 되었다.

서대문 형무소는 일제강점기의 아픈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한 곳으로 박물관으로서 깔끔하게 동선을 구성하였으며 학생들이 학습하기에 적합한 컨텐츠로 구성이 되었다.

여기서 간단한 위키 백과의 소개

1908년 의병탄압을 위해 만들어졌다. 일본 제국주의에 의해 세워졌던 경성감옥을 시초로 하고 있으며, 1923년 서대문 형무소로 개칭되었다. 이후 해방 뒤에도 교도소, 구치소로 활용되다가 1987년 교도소 시설은 경기도 의왕시로 옮기고, 박물관, 문화재 형식으로 운영하고 있으며, 현재 그 건물에 독립 공원의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이 설치되어 있다. 대한제국 말기에 지어져 일제강점기 때의 독립운동뿐만 아니라 광복 이후 정치적 격변과 민주화운동에 이르기까지, 근·현대사의 여러 주요 사건과 연관된 장소가 되었다.

이곳은 아이러니하게 의병들을 감금하기 위해 만들어진 곳으로서 일제치하, 6.25 전쟁, 민주화운동, 4.19 등의 한국 근현대사의 흔적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교정 기능으로서 교도서는 의왕으로 옮겨졌으며 지금은 박물관으로 운영되고 있다.

인상 깊었던 곳은 이곳에서 수감된 독립투사들의 사진들이다. 직업, 나이, 출신 등을 다 다르지만 그들의 눈빛 속에서 결연한 조국 독립에 대한 의지를 읽을 수 있었다. 그 중 일부는 형장의 이슬로 일부는 고문중에 순국하였고 나머지 일부는 고문 후유증을 안은 채 출소하였으리라...


제일 가슴 먹먹한 곳은 사형장이다.
사형장은 예전 모습 그대로 보존을 잘하였다.
앞에는 교수형 시설이 있고 그 뒤로는 참관인들의 자리가 배치되어 있다.
그리고 교수형 자리 밑에는 죽은 시체를 처리할 수 있는 조그마한 지하실이 있다.

사형장 앞에는 조그마한 미루나무가 있다.
미루나무는 보통 아름드리 커다랗게 자라는데 여기에 있는 나무는 슬픈 이야기와 원한 때문인지 저 정도 밖에 자라지 않는다고 한다.


더운날씨지만 서대문 형무소를 3시간 정도 관람하고 나니 조국 독립을 위해 희생하신 분들의 희생에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마지막으로 기념품 가게에 들려 책자와 부채를 구입하고 귀가!
반응형
반응형

블라디보스토크 시내에는 꽤나 괜찮은 레스토랑이 많다.

구글 좌표에 표시를 하면서 삼시세끼를 돌아다녔는데 실망한 곳은 없었다.

1.조지아 레스토랑 전문점이다. 정통 러시아 음식과 중동 음식을 둘 다 느낄 수 있는 곳. 인테리어는 깔끔하고 모던하게 해놓았다. 단, 누추한 곳에 위치하고 있으니 유의할 것


우리는 연어구이, 닭다리 숯불구이, 양 숯불구이, 파스타를 시켰는데 양이 적은 것 빼고는 다 괜찮았다. 특히 양고기는 인상 깊었음.

Satsivi 구글맵

2. Lozhki-Ploshki
로즈끼 플로스까 구글맵

러시아 만두인 펠메니를 만드는 현지인 맛집. 치킨, 연어, 오징어를 넣은 만두를 먹었는데 생각보다 맛있진 않음. 차라리 비비고 만두가 맛있다.
한국인들은 얇은 만두피에 익숙해져서 그런지 투박한 팰메니 만두피는 좀 어색하게 느낄 것 같다.

가게는 지하에 있고 내부는 꽤나 독특하게 꾸몄다. 조리도구로 개성있게 인테리어를 한 아이디어가 인상적이었음



3. 파이브 오클락
Five O'clock

영국의 티스토어를 표방하는 티하우스.
인테리어도 영국 영국하다. 심지어 엘리자베스 여왕 그림이 크게 걸려있을 정도로...
가구도 체크무늬 패브릭으로 구성함.

차는 어지간한 종류의 차는 다 맛볼 수 있다.
케익도 나쁘지 않았음. 특히 당근 케익은 아이들이 좋아했다. 여행하다가 지치고 쉬고 싶고 당 땡길때 잠깐 들려서 편안히 쉬기에 안성맞춤이다.


4.우흐 뜨이 블린
우흐뜨이블린 구글맵
러시아 팬케이크 전문점. 아침을 먹으러 오기에 안성 맞춤인 곳.
놀라운 것은 매장의 절반 이상이 한국인이다.
처음에 들어오자마자 강남역 식당 온 것 같은 분위기 ㅎㅎㅎ

햄치즈, 돼지고기, 초콜릿 바나나, 버섯 블린을 시켰는데 초콜릿 바나나는 너무 느끼해서 못먹었다.

반응형
반응형

공교롭게 이번 블라디 여행은 남북 2차 정상 회담과 겹쳤다.

2시간 비행기를 타고 넘어온 블라디보스토크.

통일이 된다면 KTX로 4시간이면 충분히 올만한 거리인데 이 가까운 곳에 유럽을 느낄만한 곳이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그리고 조만간 이 놀라움이 현실이 되길 기대한다.


1. 블라디보스토크 포인트 1번지는 독수리 전망대.

블라디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전망대로서 금각만을 가로지르는 금각교를 한눈에 볼 수 있다.

현지인의 데이트 장소로서 멋진 야경 특히 일몰이 유명하다.

이곳은 시내에서 도보로 이동하기에는 다소 멀지만 30분 정도 서서히 걸어가기에는 괜찮다. 우린 초등 애들 데리고 걸어갔다.

시간이 괜찮으면 푸니쿨라 즉 가파른 언덕을 오르내리는 트램을 타보길 추천한다. 시시하긴 한데 14루블 싼 값에 이색적인 경험을 즐기기엔 좋다. 홍콩 트램 유사품.


2. 잠수함 박물관
2차 세계대전 당시 20여 연승에 빛나는 C56잠수함을 전시한 곳. 이 잠수함으로 독일 잠수함 14척을 침몰시켰다고 한다. 과거 잠수함의 모습을 잘 재현하여서 잠수함 생활이 얼마나 답답할지 몸소 느낄 수 있다. 그리고 그 밖에는 대조국 전쟁에서 희생된 무명용사들을 기리는 꺼지지.않는 불꽃이 활활타고 있다.

3. 해양공원 및 씨푸드 마켓

해양공원은 수변공간일 잘 조성한 곳이다.
아르바트 거리를 걷다보면 만나게 되는데 도심속 바닷가라서 사람들이 많다.

산책로도 잘 조성되어 있고 한쪽에는 월미도 삘 충만한 놀이 공원도 있다.

뭐니 뭐니 해도 이 날의 압권은 배터지게 먹은 곰새우와 대게.... 4인 가족이 배불리먹어도 5만원을 넘지 않는다. 가격도 가격이지만 더 놀라운 것은 맛이다. 얼린 새우와 게를 보며 별 기대를 하지 않았지만 곰새우의 달콤함에 매료되어 가성비 극대화 경험을 했다.

4. 마린스키 극장
가성비 끝판왕은 예술 공연이 아닐까 싶다.
극동 지방이라 고퀄의 공연을 기대하지 않고 예매를 했다. 1인당 2만원 가격에 맥베스 뮤지컬 공연을 봤다. 그것도 장장 3시간 넘게... 인터미션도 3회.

러시아어 공연이긴 하지만 배우와 오케스트라 포먼스는 만족할만한 수준이었다. 공연장 시설도 훌륭하고...

남북철도 연결되면 우리나라 문화 예술인들은 러시아 사람들과 경쟁하게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5.신한촌 기념비

시내에서 10분 정도 택시타고 가면 일반 주택가가 나온다. 지극히 평범한 주택가에 어울리지 않는 비석이 서있는데 그것이 항일 독립운동 기지 역할을 한 곳이다.

연해주 한인들은 여기서 땅을 개간하며 고된 객지 살이를 하였고 살만하질 때 즈음인 1937년 스탈린의 강제이주 정책으로 블라디보스톡 중앙광장에 모여 시베리아 열차를 타고 중앙아시아로 흩어지게 된다.

6. 블라디보스톡 시내
블라디 시내는 나름 poshy하다. 그 중에 으뜸은 굼백화점 뒷골목...

조명빨이 가득한 뒷골목은 허름한 벽돌 건물과 벽화가 잘 어울려저 낭만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

7. 중앙광장
주말이면 장이 선다는데 평일에는 인간이 비둘기에게 역관광 당하는 곳이다.

반응형
반응형

 Ussuriysk 우수리스크는 굉장히 작은 시골 마을이다. 걸어서 30분 정도면 시내 어지간한 곳은 다 걸어다닐 수 있다.

작지만 이곳은 연해주 독립 운동의 본거지로서 한국인에게는 의미가 깊은 곳이다.

그 중에 가장 먼저 소개하고 싶은 곳이 최재형 가옥.

최재형 선생은 안중근 의사의 든든한 후원지로서 독립 운동의 자금줄 역할을 하신 분이다.

독립운동의 자금줄이라고 이 분은 원래 부잣집에서 태어나신 분이 아니다. 노비의 아들로서 가족들이 쫓기듯 연해주로 도망쳐서 자리를 잡고 장사를 하면서 부를 쌓았다.

이후 나라가 위태로워지자 독립운동 후원을 자처하며 국내외 독립운동의 물질적 후견인 역할을 하였다. 아울러 이 지역에 수많은 학교를 세워 교육 사업도 크게 하셨다.



유투브 비디오
하지만 아쉽게도 일본군의 대대적인 연해주 한인 학살시 목숨을 잃게 되셨다.

기업가, 독립운동가, 교육자로서 이 분보다 더 탁월한 분이 계셨을까? 최재형 선생의 업적에 비해    우리는 너무나 이 분을 몰랐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번째 인물은 헤이그 특사 이상설 선생이다.
우수리스크에는 이상설 선생의 유허비를 볼 수 있다.

대한제국의 문신이자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이신 이상설 선생은, 
한학을 배워 조선시대 마지막 과거 합격자들 중 한 사람이었으며 젊어서 이미 대학자로 명망을 얻은 인물이었지만
 동시에 당시 한국인들 중 서구의 정치, 경제, 문화에 가장 해박한 축에 드는 인물이기도 했습니다.  

국권이 일본에 넘어가게 되자 국외로 망명하여 독립운동을 전개하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판단하였고 
1906년 이동녕 등과 블라디보스토크를 거쳐 연해주로 이주, 1907년 고종의 밀지를 받고,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 이준 ·이위종과 함께 
참석하였고, 일본의 침략행위를 규탄하여 전세계에 알리려 하였으나 일본의 계략으로 참석을 거부당하였습니다. 
또한 이상설 선생은 연해주에서 권업회(勸業會)를 조직하고, 《권업보(勸業報)》을 발행, 계몽운동을 전개하였습니다. 

이후 이상설 선생은 건강이 악화되어 1917년 3월 2일 48세를 일기로 순국하였습니다. 다음은 임종을 지킨 동지들에게 남긴 유언.

동지들은 합세하여 조국광복을 기필코 이룩하라. 나는 조국광복을 이루지 못하고 이 세상을 떠나니 어찌 고혼인들 조국에 돌아갈 수 있으랴. 내 몸과 유품은 모두 불태우고 그 재도 바다에 날린 후 제사도 지내지 말라

이상설의 임종을 지켰던 동지들은 유언대로 아무르 강가에 장작을 쌓아놓고 이상설의 유해를 화장했으며, 
문고와 유품도 함께 거두어 불살라 그 재를 수이푼강에 날렸다고 합니다.

보재 이상설 선생 유허비 비문은 다음과 같다.

보재 이상설 선생은 1870년 한국 충청북도 진천에서 탄생하여 1917년 연해주 우수리스크에서 서거한 한국독립운동의 지도자이다. 

1907년 7월 광무(고종)황제의 밀지를 받고 헤이그 만국평화 회의에 이준, 이위종 등을 대동하고 사행(使行)하여 한국독립을 주장하다. 이어 연해주에서 성명회와 권업회를 조직하여 조국독립운동에 헌신 중 순국하다. 

그 유언에 따라 화장하고 그 재를 이곳 수이푼 강물에 뿌리다. 광복회와 고려학술문화재단은 2001년 10월 18일 러시아 정부의 협조를 얻어 이 비를 세우다.

바로 옆으로 흐르는 세찬 강물을 보며 독립을 염원하는 그 마음이 눈물로 흐르는 것처럼 느껴졌다.


마지막으로 소개할 곳은 고려인 기념관

생각보다 컨텐츠는 빈약했지만 그래도 뒤늦게나미 이런 기념관이 생각다는 것이 다행이다.

까레이스키의 고단한 삶을 잘 담아낸 이 박물관은 연해주 지역을 이해하기 위한 개론 역할을 톡톡히 한다.


우수리스크 위치
반응형

+ Recent posts